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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로 이사 온 한 부부가 있습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의 아버지를 위해

부부는 시골 구석의 외딴집으로 오게 되었죠.

집 주위로 옥수수밭이 넓게 펼쳐진

마당이 딸린, 풍경이 좋은 집입니다.

 

이삿날,

근처에서 찜질방을 운영하는 주인이

옥수수 한 바구니를 들고 찾아옵니다.

찜질방 주인은 옥수수를 함께 먹으며

어떤 연유로 이곳에 이사오게 되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여러가지를 물어보지만

부부는 질문을 불편해하는 기색이 분명합니다.

 

이 부부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습니다.

 

찜질방 주인은 부부에게 종교가 있냐 묻습니다.

부부는 지루한 전도가 시작되겠다 생각했지만

찜질방 주인의 이야기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마을 인근에 옥황상제를 섬기는 종교의 총본산이 있고

이따금씩 시커멓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다니며 

헌금이란 명목으로 돈을 뜯어가니

함부로 문을 열어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아주 조금씩

유유자적하고 풍경이 좋은 시골집은

누군가의 침입으로부터 지켜야하는

외딴 집이 되기 시작합니다.

 

며칠 뒤 이사정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부부는 초인종 소리를 듣습니다.

대문 앞에는 두 여자가 서있었습니다.

찜질방 주인에게 들었던 옥황상제를 섬기는 전도사들이었죠.

 

남편은 현관문을 열어 그들에게 가라 손짓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거부가 익숙한 듯

문앞에 가만히 선 채로

찬송하고 기도하고 경전을 읽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옥황상제는 모든 것을 지켜보며

행동에 따라 상도 내리고 벌도 내린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쓰레기를 버리러 마당으로 나가자

전도사들은 남편을 향해

옥황상제가 모든 것을 다 보고있다며 소리를 높입니다.

 

남편은 그들의 말을 가볍게 들으며

옥황상제가 그렇게 할 일이 없냐

어떻게 모든 사람을 살펴보냐 말하자

전도사들은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식구들은 서로서로 행태를 관찰하지요.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죠.

그것이 매년 황제의 귀와 눈에 들어갑니다.

황제는 보지 않아도 다 아십니다.

- 편혜영, <어쩌면 스무번>, 13p

 


 

전도사들의 말에 따르면

식구는 잘못을 감싸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목격하고

의도치 않게 고발하는 목격자이자 고발자입니다.

 

전도사 한 명이 책자 하나를 꺼내

남편에게 주려하지만

남편은 그것을 뿌리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전도사가 땅에 쓰러지게 되죠.

 

남편은 미안하다고 손짓하면서

동시에 거실에서 

아내가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단 것을 의식합니다.

 

식구는 잘못의 목격자이자 고발자라는

전도사의 말이 머리에 맴돌게 됩니다.

 

전도사들은 남편을 근엄히 꾸짖은 후 사라집니다.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아내는

옥황상제가 쳐다보는데 무슨 불경한 짓이냐 농담하고

둘은 서로를 쳐다보며 한바탕 웃습니다.

 

식구는 전도사들의 말처럼

자신의 잘못을 목격하고 고발하는 존재일까요?

 

며칠 후,

이번엔 소형차를 타고 온

한 남자와 여자가 대문 앞에 나타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보안회사 직원이라 소개하죠.

 

아내는 이사온 첫날부터

집 주변의 치안을 불안해했고

보안회사 직원들을 마당으로 들입니다. 

 

보안회사 직원들은 전문적인 태도로

이 집의 보안상 취약한 부분과

보완해야 할 사항을 알려줍니다.

 

자신들과 계약할 경우

집 안에서 큰 소리가 나면

5분 안에 요원이 도착한다

자신만만하게 말하죠.

 

아내는 보안이 꼭 필요하다 했지만

쉽게 계약할 생각은 없어보입니다.

그들은 그럴만한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죠.

 

이 집에는 돈을 버는 사람이 없습니다.

치매를 앓는 노인,

정신적인 문제를 겪어 회사를 그만둔 남편,

그리고 그런 노인과 남편을 돌보느라 

일을 할 수 없는 아내.

 

이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은

아버지를 모시는 대가로

아내의 언니로부터 받는 돈뿐입니다.

 

부부가 쉽게 계약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남자직원은 갑자기 고함을 지르기 시작합니다.

있는 힘껏 소리지른 남자는

깜짝 놀란 아내에게

태연하게 물 한 잔을 가져달라 합니다.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남자는 이야기하죠.

자신이 이렇게 크게 소리를 질렀는데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이죠.

 

부부의 마음 속에 불안함을 성공적으로 심은 두 직원은

잘 생각해보라는 말과 함께 책자를 남기고 떠납니다.

 

이제 시골의 풍경 좋은 집은

언제고 위험이 닥칠 수 있지만

도움은 나타나지 않는 곳이 되었습니다.

 

걱정이 되지만 돈이 아쉬운 부부는

모형 CCTV를 사서 설치하기로 결심합니다.

 

다음날,

아내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약을 먹이고 있습니다.

 

치매를 앓는 장인은

어린아이처럼 아내를 따라다니고 칭얼대지만

약을 먹이면 순하게 잠에 빠져듭니다.

 

아내의 아버지가 잠에 빠져들고 난 고요한 시간은

부부의 안락한 휴식시간이고

아내의 아버지가 약에 취해 잠드는 시간은 점점 길어져 갑니다.

 

부부는 자주 어느 쪽이 유리한지 생각했습니다.

아내의 아버지가 죽어 유산을 받는 것과

죽지 않고 살아 매달 푼돈을 받는 것.

 

유산을 받는다면 목돈이 생기겠지만

빚을 갚고나면 얼마 남지 않을 테고

매달 푼돈이라도 받는 게 좋겠단 결론에 도달하죠.

 

아내의 아버지가 잠을 깰 때면

방이 어두캄캄하여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멍이 들 때까지 문을 두드립니다.

 

불을 켜는 법을 몇 번이고 가르쳐주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죠.

 

사나워진 노인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아내가 아내의 아버지보다 더 사나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내의 아버지와 아내가 사나워지면

겁에 질린 남편은 집밖으로 달아나

옥수수밭으로 향합니다.

 

거기서 서서히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죠.

그리고 이때

이 책의 제목인 어쩌면 스무 번이 등장합니다.

 


 

운좋게 둥근달을 보는 날이면

옥수수밭에 숨어서

이렇게 꽉 찬 보름달을

얼마나 더 보게 될까 싶어졌다.

어쩌면 스무 번.

기껏해야 그 정도라고 생각하면 눈가가 시큰해졌다.

- 편혜영, <어쩌면 스무번>, 13p

 


 

남편은 옥수수 몇 개를 서리하여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장인은 조용히 잠들어있죠.

 

아내는 내가 가져온 옥수수를 삶으면서

남편이 먹을 약을 세어봅니다.

약이 모자란다고 말하는 아내는

약을 더 받기 위해 

멀리 있는 병원에 가야한다고 말합니다.

 

결국,

아내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먹이는 약은

남편이 탄 수면제이며

아버지에게 먹이는 약의 양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아내에게 아버지는

약을 먹이고 조용히 시간이 지나면

매달 푼돈을 내놓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제 공포의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부부가 느꼈던

외부인의 침입에 대한 공포 속에는

집 안에 존재하는 비밀,

자신의 아버지에게 과다한 수면제를 복용시킨다는

그 비밀이 밝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던 것입니다.

 

며칠 뒤,

약국을 다녀온 부부는

이미 제 집인냥 마당에 들어와있는

보안회사 직원들을 발견합니다.

 

이제 보안회사 직원들은

외부의 불안감을 조장해

계약을 강요하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집안에 내재된 불안을

목격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남자직원은 부부가 설치한 모형 CCTV를 만집니다.

그리고 현관 보조 자물쇠를 가리키며 말합니다.

보통 집안에 금덩어리를 숨겼거나

사납고 커다란 짐승이 사는 집이 이런 자물쇠를 단다고.

 

그리고는 이야기를 시작하죠.

남자는 지난해 일어난 끔찍한 사건에 대해 말합니다.

 

주변이 죄다 옥수수밭인 어느 외딴집에서

건장한 사내 두 명이 무단침입을 했다는 이야기.

집에 훔칠 것이 현금 육만칠천원밖에 없자 

화가 난 그들이 노인의 온몸을 칼로 찔렀다는 이야기.

 

남자는 손을 뻗어 부부의 거실을 가리킵니다.

바로 저기에서

노인이 온몸에 피를 묻히고 죽었다고 말하죠.

 

그제야 이 집이 왜이리 싸게 나온 것인지

부부는 알게 됩니다.

 

이야기를 마친 남자는 거실창쪽으로 다가갑니다.

그러고는 갑자기 거실창문을 열었다 닫습니다.

아내는 남자의 행동에 흠씬 놀라죠.

 

안에 뭐가 있나요?, 묻는 남자에게

아내는 재빠르게 사나운 개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남자는 개는 사납게 짖어야 한다며

안에 있는 개를 짖게 만들려는 듯이

현관문을 발로 세게 걷어찹니다.

 

남편은 장인이 깨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아내가 겁에 질려 울기 시작하죠.

남편은 아내가 우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비명을 지르기 시작합니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는 남편을 보고

그렇게 비명을 지르면

다음엔 자신들이 달려올 거라 이야기합니다.

그러고는 계약서를 들이밀죠.

 

아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사인하고

보안회사 직원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사라집니다.

 

집 안으로 들어온 부부.

남편은 장인이 깨지 않아 다행이지만

지나치게 오래 자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장인이 왜이리 오래 자는지

요즘 약을 몇 알이나 먹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이내 포기하고 맙니다.

 

남편은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보지만

어둑해진 옥수수밭 위에는

달도 보이지 않습니다.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과연 아내의 아버지는 죽은 것인지

아니면 약에 취해 긴 잠을 자는 것인지

소설은 끝내 어느 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육만칠천원 때문에 강도에게 죽은 노인과

부부의 매달 푼돈때문에 약에 취해 연명하는 아내의 아버지는

꽤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 보입니다.

 

전도사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잘못에 대한

목격자이자 고발자가 될 수 있을까요?

 

소설은 내내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두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두려움은 어디에서 올까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아니면 애써 외면해왔던 내 안에서 오는 것일까요?

 

편혜영의 소설 <어쩌면 스무 번>이었습니다.

 


 

글쓴이의 목소리로 편혜영의 <어쩌면 스무 번>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

https://www.youtube.com/watch?v=eyyuA0jO-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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